 |
수박을 하면 곤장이 백대!
 “박희(搏戱)로써 돈과 물건을 내기한자는 각각 곤장 1백대 이며, 돈을 대고 도박을 시킨자 또한 곤장 1백대의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음식을 걸고 활쏘기를 익히는 무예자는 비록 돈과 물건을 걸었다해도 죄가 없다. 고려사, 권85, 형법지(刑法志). 2 금령(禁令).
고려 때 법(法)으로 엄금(嚴禁, 곤장 백대는 쳐 죽이겠다는 말과 같다)했던 수박(手搏)이 설마 요즘처럼 손바닥이나 치고 노는 유습에 한하였을까? 아니다. 잘 만하면 벼슬길도 열리는 무예였으며, 무인(武人)의 특기였다. 위력적인 것 또한, 정사(正史)가 말해 주고 있다.
그 당시 이의민(? ~ 1196, 명종 26)이란 자가 있었다 한다. 아버지 이선은 소금장수 였고, 모친은 옥령사(玉靈寺)란 절의 여종이었다고 한다. 8척 장신에 타고 난 기골은 장대하여 두 형과 함께 시골구석(지금의 경주)을 횡행하며 온갖 흉폭한 짓을 일삼아 왔다. 그러던 중 이들의 악행을 알게 된 안찰사(按察使) 김자양이 어느 날 잡아다가 족쳤다. 그런데 두 형은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 자는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수박이 법률로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과목이 되기도 한다. 세종실록 세종25년(1443) 11월, 삼가 <육전>을 상고하건데 이르기를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능히 삼백보를 달리는 자가 상등이고, 이백보를 달리는 자가 중등’이다. 또 수박의 기능이 능히 네 사람을 이기는 자가 상등이고 세 사람을 이기는 자가 중등이 된다”하였다. (조선 최초의 법전이었던 '육전(六典:경제육전)'에 실린 임금의 호위무사인 보갑사(步甲士) 선발 규정 中)
고려 형법지(刑法志)에 현상금을 걸고 박투(搏鬪)할 때의 기술이 수박이었다 한다. 조선 세조때는 노비(奴)들까지 나라에서 수박으로써 시재한다는 말을 듣고는 서로 모여서 수박으로 용사들을 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