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검도회관 ::

제목: 제 1화 (第1話) 들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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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6-23 18:18
조회수: 829
 

 


프롤로그(prologue)



검도수행 60년을 넘어서 이제 내 앞의 선배는 아무도 없다.



물론 연령으로 따지면 나보다 선배가 몇 분 되지만 검도 수행 연륜으로 따지면 그렇다.



검도 역사를 잘 모르는 후배들은 더 더욱 이 말에 대해 의아해 할 것이다. 검도세계 단급의 차등 표현이 있는데 그것이 검도 선후배의 위치를 규정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단급의 발생 경위는 무술세계에서 그 투쟁이 내용이요. 그 내용의 구체적 결과가 승패다.



그 승부의 실력을 차등을 두어 표시 하는 것이 단급 시작의 최초 모습이었다. 즉 오래 수행하되 많은 시합 경험과 그 경험 내용의 승리 기록이 단급이란 뜻이다.



검도의 단급의 기준은 인격자도 아니며 재벌가도 아니며 검도 발전에 검도 실력 이외에 검도발전에 크게 기여 한바가 있다 하더라도 검도실력의 차선에 위치하는 것이 검도 단급의 차등 내용이다.



오직 이기는 실력을 단급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기는 것도 비슷한 연령대의 검도인 들과의 기준에서 단급 등급이 정해진다. 연령대를 무시하고 10대와 40대를 함께 심사하는 일은 없어야 하였다. 연령 차등이 많이 나는 선후배가 혼재하여 실력을 판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출생한 검도인 들이 계속적으로 검도 수행을 하면서 그 실력을 판정받아 승단하는 정상적 절차가 그랬다. 1953년 해방후 최초의 개인전. 단체전 출전한 검도인 들을 기준 한다면 도호문선생(1920년생)이교신선생(1920년생) 김응문선생(1920년생)을 필두로 강용덕(1924년생). 김인식. 최상조. 조승룡, 김복남. 전동욱(1925년생).김석춘(1927년생).윤병일(1923년생)선생 등이 해방 후 최초의 경기인 으로서 시합을 시작한 분들이다.



여기서 다시 그 실력의 등급에 따라 구분이 된다. 그러나 1920년생이라도 연령차가 4.5년차의1910년대 출생의 선수들과 싸우게 되는 도호문선생과 이교신 선생은 1910년대 선수들과 한 묶음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뒤로 1920년생 이면서 당시 단급이 도호문 선생과 이교신 선생보다 낮은 단이라서 김응문 선생은 1920년대로 분류된다.



그러나 1924년생 강용덕선생만 1920년대 출생자들과 함께 물리면서 1920년대 선수들과 겨루기도 했다. 그만큼 1920년대 출생 선수중 도호문선생과 함께 명성을 드날린 선수이기도 했다. 비록 경기 기록은 찬란하지 못했어도 가장 초기에 선수생활을 하고 20년대 생들 중 오래 살다 가신 분이 경기도 주장으로 선수생활을 하신 김복남 선생이시다. 오랜 7단에서 후배들에게 8단을 추월당하는 알수 없는 수모를 겪은 분이기도 하다.



필자보다 대 선배이면서 8단 승단이 아주 늦었던 안타까운 분이셨다. 그분들의 세세한 사연들은 차차 공개 하겠지만 이즈음 문란해진 단 서열 파괴는 심각한 검도 파괴와 같다. 필자 앞에 단 한분 계시던 조승룡 선배님 떠나시고 난후 이제 단 서열상 선배는 단 한분도 없다는 뜻이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최상조, 신용순, 김복남 선생님 들이 후배들에게 단의서열이 바뀐 내력을 알지 못한다. 이제 아무도 보고 듣지 못했던 사연부터 시작하여 신검도 특강의 문을 열고자 한다.



함께 토론하고 연구해서 일본 영역을 벗어나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1950 년대 고, 대, 일반, 선수로 7회나 활약한 사람은 필자 밖에 없다. 그래서 못보고 못들은후배들을 위해 이야기를 남기려 하는 것이다.


제 1화 (第1話) 들어가면서


 


1. (옛 중국에 이런 권학시(勸學詩)가 있었다.)


소소수근학(少少須勤學)
문장가입신(文章可立身)
만조청자귀(滿朝靑紫貴)
개시독서인(皆是讀書人)
 “젊을 제 부지런히 공부하시오
 글로써 가히 입신할 수 있으니
 조정에 가득한 청자 빛 귀한 분들
 이 모두 글 읽은 사람들이오.”
 
만일에 이 시에 공부(學)대신에 무(武)를 대입 시킨다면 젊어 부지런히 무를 익히시오
무로써 가히 입신할 수 있으니 조정에 가득한 출세한 장군들이 모두 무(武)를 행한 사람들이오 라고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선생은 약간 고쳐 썼다.


소소수근학(少少須勤學)
문장가윤신(文章可潤身)
 유방천백세(遺芳千百歲)        
총시독서인(總是讀書人)
  “젊을 제 모름지기 학문에 힘써오
 글로써 그 몸에 윤기 흐르니
 빛난 이름 천 백세에 남기는구나
 이 모두 글 읽은 사람들이오.”
 


❉다시 노산(鷺山)선생의 개작(改作)한 시를 무(武)자를 대입 시킨다면 젊어서 모름지기 무(武)에 힘써오 무(武)로써 그 몸에 건강 흐르니 빛난 이름 천백세 남기는 구나 이 모두 무(武)익힌들 사람들이오 라고 표현될 수 있다


 
3. 명나라 풍휘(偑鰴)란 어사(御史)가 모략에 걸려 요동(遼東)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때 그는 귀양 간 것을 탄식하며 고쳐 읊었다.


소소휴근학(少少休勤學)        
문장오료신(文章誤了身)         
요동삼만위(遼東三萬衛)         
진시독서인(盡是讀書人)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지 마오.
 글로써 제 몸 망치옵나니
 요동 땅 삼 만 명의 귀양 객들도
 이 모두 글 읽은 사람들이라네.”
 
풍휘(偑徽)란 사람의 개작(改作)한 시에 무(武)라를 대입 시킨다면 젊어서 열심히 무(武)를 익히지 마오.
무(武)익히고 별 볼일 없는 자들 열심히 무(武)익힌 사람들이라네.  
여기서 우리는 무(武)로 인해 문(文)이 빈약한 자들이 항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문(文)의 하위(下位)에서 천대 받고 혹 선수출신이 무능한 비 선수 출신의 아래에 위치하는 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4. 이조 선조 때 인격과 학문으로 사람을 뽑지 않고 정실과 뇌물로 임용하는 것을 본 어느 선비가 개탄해서 고쳐 쓴 것이다.


소소수근학(少少誰勤學)        
문장미입신(文章未立身)         
만조청자귀(滿朝靑紫貴)         
불시독서인(不是讀書人)
 “젊어서 그 누가 공부하리요
글로써 입신하지 못하노니
조정에 가득 찬 청자빛 귀한 분들
글 읽은 사람들이 아닙디다요.”
 
다시 여기에 무(武)를 대입 시킨다면 열심히 무(武)를 익힌 자가 정실과 뇌물로 승단(昇段)순서가 뒤바뀌고 선수 비선수가 같은 단(段)의 대우를 받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만일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더욱이 별 이유도 없이 후배가 선배를 앞지르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도 이 권학시야 말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 하다.
그랬을 때 이 사회구성원이 될 소년들은 건강한 지식인들이 될 것이고 그 건강한 지식인들은 수준 높은 민도(民度)를 이룰 것이고 그 민도야 말로 그렇게 열망하고 있는 고급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긴 역사가 가장 세계에서 불행한 국토 분단의 비극 속에 민도(民度)가 하급 수준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때 권학 시는 권무 시(勸武詩)로 바꿔 읽어 볼 수도 있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간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명나라 풍휘의 개작시를 보자 무술 실력이 뛰어난 자가 그렇지 못한 다수의 질투시기로 그 기량 실력을 대우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주변은 그런 일은 없는가 살펴보고 그 판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술 실력이 뛰어난 자라 함은
첫째 선수로서 개인전을 수차례 우승한 자
둘째 선수로서 단체전 주장으로써 수차례 우승한 자
셋째 우승한 대회가 비중 있는 대회인가?
(우수 선수들의 대회인가?)
넷째  지도 경력이 우수한가?
(수차례 자기 선수를 우승시켰는가? 또는 좋은 선수를 스카웃한 결과인가 평범한 선수들 우수하게 만들었는가?)
다섯째 예의바른 사람인가(언행(言行)이)
여섯째 기타 그 분야의 발전에 공로가 있는 자여야 한다.


 이조 선조 때 선비의 개작시를 보자
무술 세계 단급 심사는 실력자가 되어야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하며 선수로 지도자로 우수한자가 승단 승급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하라
일월서의(日月逝矣)니 세불아연(歲不我延)이라
오호로의(嗚呼老矣)아, 시수지건(是誰之愆)고.
“말하지 말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해와 달은 자꾸 가건만 세월은 이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아, 슬프다 늙었노라!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소년이로(少年易老)하고 학난성(學難成)하니
일촌광음(一寸光陰)인들 불가경(不可輕)이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이어늘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라.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각의 시간인들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연못가 어린 풀이  봄꿈도 깨기 전에
뜰 앞의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인고
 참으로 학문이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늘 책을 가까이 했고 나는 꽤 이야기꾼으로 기억된다
 교실 단상에 뽑히어 이야기를 들려주던 초등학교 시절과 그리고 급우들을 리드하던 어린 시절은 참으로 괜찮은 소년이었던 것 같다. 중3때는 우연히 한미 공동 방화 선전 작품에 투고한 글이 2등에 당선 된 것이 터무니없는 문학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이때 1등이 경북여고생이었고 내가 2등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술을 가까이 하게 되고 검도와 가까이 되어 일평생 검도와 함께 살아왔다.
나의 경우 학문에만 매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팽개칠 수도 없고 애매한 것이 학문이라고 늘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문무(文武) 겸전(兼全)하고 싶었고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내 나이 어느새 고희(古稀)를 지나 망팔(望八)목전에 두고 있다.
 "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이어늘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라. "
연못가 어린 풀 봄꿈도 깨기 전에 뜰 앞에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인고.....
50여 년간 검도 한길로 달려오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이제 행동의 전환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럴 진데 이제는 그간의 긴 여정에서 얻은 지식 전해야할 역사적 사건 및 사실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여 후학들에게 참고가 되고 아울러 보탬이 되는 이야기들을 야화로 묶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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