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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3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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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05-03 16:42
조회수: 169
 

35

     

1959723일 목 맑음

상무 갔다. 운동했다. 세무서 직원, 간세과장, 김종철 선생 나왔다. 수박을 한 가마니 따 오셨다.

     

1959728일 화 맑음

정태민 선생님 지방 출장 갔다 오시었다.

형무관 세무서원 각 1, 학생 1명 등 운동했다.

     

1959729일 수 맑음

상무 갔다. 정태민, 이순영 선생 안 나오시고 배성도 선생과 오랜만에 나오신 강용덕 사범님과 운동했다.

충북과 아니 전국 시합 때 고전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야지

* 해방 후 학생부가 경북이 선두 주자로 달릴 무렵 충북이 뒤 따르고 있었고 충북의 오세억    은 주장으로 맞붙었다. 고등학교 시절 부산서 고전 끝에 이기고 다시 대학부에서 맞붙은 기    억들이 더욱 더 연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맹훈련을 했다.

  2018년 현재 기억으로는 여러 상대 중 오세억과의 시합이 오히려 김춘경. 전영술. 보다도     더 까다로웠다고 여겨진다. 당시 고등, 대학 시합에서 숙명적으로 마주친 주장 이었다. 김춘    경이 당시 2년 후배 이고 전영술이 4년 후배이기 때문에 시합할 기회가 없었다. 60년대 들    어서서 비로소 그 후배들과 격돌 하게 된다.

     

1959730일 목 맑음

... 상무갔다. 정태민 선생, 남정보 선생, 강용덕 선생 등과 운동하다...

1959731일 금 맑음

거성(巨星)은 떨어지다. 전 진보당 당수 조봉암씨는 정치 운동한 죄 밖에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주를 마시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허무한 무()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봉암 선생은 아까운 분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어 그   의 억울한 죽음을 나는 애통해 했다.

195981일 토 맑음

상무 갔다. 정태민, 남정보, 배정도, 강용덕 사범님, 서갑득씨, 고광찬, 심홍보, 김봉조 형사, 세무서 직원 다수 참가하여 운동했다.

*이 무렵이 모서(冒暑) 연무 기간으로 많은 인원들이 그럴싸하게 열렬한 수련을 하던 시절이   다. 이문화가 사라지고 상업화된 도장 문화는 무도가 아니라 오락 수준의 놀이에 불과하다.

그 현대적 효과는 별개의 문제이다.(2018년 현재)

     

195989일 흐림

... 배성도 선생 댁 들렸다. 배 선생은 무슨 불만인지 정태민 선생님을 욕하며 운동하지 않겠다고 했다.

1959815일 토 맑음

     

상무 갔다. 경북유도회 모서 특별 연무 기간 최종일로써 시합이 있었다. 이선길 선생 방영두  치안국 유도 체육관님 등의 참석 리 에 개막, 유단자 특선 시합에서 영남고의 이우식 군이 갈은 영남고의 윤창희 군한테 지고 윤창희가 계성고의 최태룡에 졌다. 검도는 내 20일부터 모서 특별 연무기간이라 했다.

     

유도의 이선길 선생은 전 일본 유도 선수권대회 3회 우승의 신화적 인물로써 필자의 검도     은사 이순영선생의 부친이시다.

  윤창희는 1959년도 마지막 이승만 대통령 친람무도대회 학생부 유도 우승자였다. (필자보다    2년 후배로 일찍 미주로 진출하였으나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전해 듣고 있다.(2018년 현재)

     

1959817일 월 맑음

상무 갔다. 남정보 선생과 검도본을 했다.  

필자는 꽤 일찍이 검도의 본 대도 소도를 익혔고 남정보 선생의 높은 경륜 자상한 지도가 필자 성장의 큰 도움을 주셨다.

     

1959818일 화 맑음

상무 갔다. 운동을 마치자 이 사범님(이순영 선생)이 나를 불렀다. 정 선생 비행사실이 폭로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며 내일쯤 무슨 사태가 벌어진다고 했다.

이순영 강용덕 사범만 제외하고 다른 사범들은 이미 중앙에 불신임을 상신하는데 날인 했다고 한다.

이 사범이 정 선생이 너한테 암말 안 하시던?” 하고 물었다

저야 아직 운동에 충실해야 할 따름이라 했더니그렇지만 이제 너도 그렇지 않다고..... ”고  말씀하시었다.

내가 경북이 싫어서 경북을 떠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정태민선생과 남정보 선생의 갈등   때문이었다.

남정보 선생은 사적으로는 남승희 선배의 부친이요 공적으로는 나의 선수로써 직접 훈련을 정태민 선생님이 더 많이 관여하셨다. 그런 연유로 해서 두 편이 균열되는 형국이 되고 자연적으로 나는 정태민 선생 쪽의 사람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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