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검도회관 ::

제목: 제 3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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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04-17 17:55
조회수: 179
 

34

     

1959628일 일 맑음

..... 정태민 선생님은 내일 6시경 김천 등지로 지방 순시 나가시게 된다고.....

이때만 해도 사범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방시군 검도 상황을 살피러 가면 융숭한 대접은 물론 검도 고단자 알기를 천황 폐하(?) 모시듯 하던 시절이었다.

     

1959630일 화 흐림

상무 가서 배성도 선생과 서경교 군 셋이 운동했다.....

이따금 사람들이 없어 사범 한명에 수련생 2명이 수련할 때도 있다. 배성도 선생의 강도 높    은 훈련은 그 소문이 검도 계에 파다할 정도로 강했다.

     

195971일 수 흐림

..... 저녁 대구 매일 신문에 나의 수필이 실렸다.....

가끔 껄적 거리는 글을 신문에 투고했더니 기재되어 가벼운 흥분을 하기도 했다. 제목은 오수의 잠꼬대

     

195972일 목 맑음

상무 가니 이순영 선생이 현금 만환을 주셨으나 받지 않았다.

선생님은 젊은 필자의 잡비를 하라고 주셨으나 예나 지금이나 까닭 없는 돈 받지 않은 것은   나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극히 필자를 사랑 해주셔서 그 외에도 무엇이던 필자에게   주려고 마음을 서 주셨다. 오래 가까이 경기도 용인에 계시다가 근년(2018417일 기준)에 작고 하셨다.

     

195974일 토 맑음

종일 한국문학 전집 22호 황순원의 역작 별과 같이 살다를 읽었다.

당시에 필자는 참 많은 소설을 읽었다. 어릴 때 꿈이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참으로 책을 좋아했었다.

     

195975일 일 맑음

..... 저녁 정태민 선생 댁 가니 김천 상주 봉화 예천 등 6개 지역 순회를 마치셨다고.....

봉화 도장이 상무 도장보다도 약간 적다고 하시었다. 이때도 도 사범은 할 만 했다.

경찰 총경 급 대우에 차도 한 대 나왔으니 이 제도를 만든 서정학 선생님의 공적은 어디 갔는지.... 20057월에 쓸쓸히 돌아가셨으니.....

     

195979일 목 맑음

상무 갔다. 어제부터 세무서직원들이 많이 나왔다. 이사범(순영)과 운동했다. 황순원 선생의 카인의 후예읽다.

     

전에도 얘기 했지만 필자의 검도 생애에 가장 흠모하던 분은 인격자 검도인 이순영선생과 김종철 선생 두 분이라 했다. 그 때 동부세무서 간세과장 김종철 선생의 부하직원 세무서원들이 많이 나와 운동했다. 이 무렵 필자는 많은 문학작품과 가까이 했다.

     

1959710일 금 맑고 흐림

상무 갔다. 학생 넷과 나와 운동했다.

     

이 무렵 필자는 왕성한 2(195931일자 승단)으로 사범님들이 나오시지 않는 날은 필자가 사범 역할을 대신했다. 이 때 나오던 후배들이 명사 중에는 이의익 전 대구시장. 박철언 전 체육부장관.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 박경팔 전 삼성전자 사장. 전 도재승 외교관 등이 있다.

     

1959711일 토 맑음

상무갔다. 학생들 지도 했다. 이순영 선생께서 18일 영천(永川)서 도장 개관식이 있으니 학생 5명과 서경교군과 같이 갈 준비하라 하시었다.

     

해방 된지 14년 되던 해로 잠시 소강상태에서 일본이 물러간 후 다시 검도 유도가 살아나던 시기라고 할까. 기존의 일본인들이 지어 주고 간 검도, 유도 도장이 부활의 의미로 새로 개관하곤 했다. 이 때 영천에 개관이 있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1959715일 수 맑음

작년 일본서 귀국한 대건 고교 3년생이 검도 회에 입회했다.

     

일본서 돌아온 일본통의 검도수련생이 가끔 입회했다.

     

1959718일 토 맑음

오전 8시경 도장 가니 서경교군이 오고 있었다.

정태민 선생님 찝 차로 이순영. 남정보. 김종철 선생 불러 나머지 일행은 신성 총무차로 모두 출발.

동촌부근서 타이어 펑크가 나서 버스로 바꿔 타고 반야월 도착. 반야월서 기차로 영천 도착 윤병일 3단이 4인 태련 시범이 있었다.

서경교. 배찬한. 심홍보. 김재일 순으로....

정태민 . 남정보선생의 대도 소도의 본과 남정보선생의 화랑류 발도술과 개인고점시합이 있었다. 저녁 귀향

     

신성선생은 유일하게 경찰이 아니었고 사업을 하시었고 오랫동안 경북 검도회 총무이사로 수고하시었다. 그리고 심흥보 씨는 유명한 정보 형사로 주로 사상범들이 가장 겁을 먹는 사람이었으나 검도 고단자에 대한 그의 고분고분 함은 참으로 특이하다고 할까. 특히 그는 전설적인 남로당 거물 남도부를 직접 격투 끝에 체포한 베테랑 사상범 소탕의 달인이었다. 필자보다 10여년 연장이지만 대개의 20년대 후반의 선배들은 승단이 늦었다. 그만큼 국내에서 필자연령대의 사람들 중에 가장 일찍 승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그 시절 일본인들이 지어 주고 간 도장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전통적 검도문화가 존속 되었을 것이다. 요즈음 체육관을 빌려 대회를 치루는 우리 검도시합장 문화는 엉망진창이다. 라커룸이 없어 죽도 호구 던져 놓고 마구 타넘고 다니고 휴지. 빈병. 깡통은 물론이고 화장실은 담배꽁초 휴지, 등 난장판이다. 지방 단위의 검도장 하나 없는 우리 실정에 이제 경기도 검도회  수련원이 2006719일에 완공되었다. 영종도 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 전철 4호선 종점 오이도역에서  5분 거리로 교통 사통팔달로 앞에 호수까지 낀 명물 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될 것은 남정보 선생의 화랑도 발도 술 이다. 해방 후 검도지식이 가장 해박한 남정보 선생의 발도 술은 이즈음 생각해 보면 그를 비웃던 그들은 그런 발도 술을 창안할만한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만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작품 창안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주변에 난립하고 있는 사이비 무술들과 검증 받지 않는 고전 무술 등의 성행은 극히 우려할 만 수준이다. 더욱이 귀한 무술자료인 조선세법 본국검 등은 정부당국의 검증능력 있는 기구도 없는 채로 중구난방 식으로 난립하고 있다. 이의 보급은 철저히 검증하고 규제하여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다. 15978월 일본인 여여문이 조선의 훈련도감 에 일본인으로써 최초의 전임 사범이 되는 딱한 역사가 있게 된다. 이어 김체건이 일본서 배워오고 정조대의 무예도보통지는 본국검 조선세법이 검()이면서 도()로 둔갑하는 일본식 도법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의 실력자 모찌다 씨가 조선총독 사범으로 오고 조선무도관 사범은 나까무라 도시끼 사범이 오면서 본격적 일본검도의 완전한 정착이 된다. 그리고 해방후 서정학 선생이 다시 보급을 이끌게 되고 그 후배 제자 등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남정선생님의 일련의 그 작업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것 화한 화랑류 발도술이 참 신선하고 내용 있는 검술 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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