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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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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5-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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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검도 선수  오더(order-포지션)

필자가 출발부터 익혀온 선수 춭 전 순서 배열 구성의 특성은 이때부터 전문화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 사례로는 누구나 위치에 꽂아도 거뜬히 그 역할을 해내는 결과는 적당한 자리에 선수기용을 기본적으로 하지만 자리가 변해도 그 자리 특성에 맞게 선수 자신도 그 포지션에 맞게 변화한다는 기능이 필자에게는 통쾌 했다.즉 어느 자리에 갖다 꽂아도 그 포지션에 맞게 변신하여 승리하는 사실 말이다. 1977년도 2년제 인천체전 소속 무명의 손방노가 4년제 대 선수들을 전부 격파하고 우승한 사실과 체전 졸업 후 전북대학에 편입하여 그후 선수로서의 실적은 전무했다. 경희대 첫 우승의 기록 이면에는 주장이 실종되어 무명의 후보 김기선이 대신 출전한 사건이 있었다. 주장 전에서 2:0으로 승리하여 우승한 사실. 온양 이 충무공 대회에서 주장의 부상으로 선수 운반 수송의 책임을 맡았던 정훈덕이 급히 투입되어 주장전 에서 전북의 당시 유명선수 김대일과 접전하면서도 훌륭히 주장 역할을 해내었다. 특히 김경남은 세계대회에서 선봉 중견 주장 어느 포포션 에서도 포지션 특성에 맞게 변신 해가면서 역할을 다 해낸 선수이다. 이렇듯 오더(order-포지션)의중요성을 일찍 필자는 간파했고 그 문화의 존재 사실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람 이기도하다.

필자의 평생에 가장 화려했던 선수 진용으로 전국체전 4연패를 하면서 한 때 전국 각종대회를 삭 슬이 하던 멤버를 살펴보자. 선봉에 정병구 2위에 김원태 3위에 태현대 중견에 김경남 5위에 황호문 부장에 선충근 주장에 고동수였다. 이 때 필자의 정서로는 선봉감은 정병구나 김원태이고 주장은 고동수, 황호문, 김경남, 태현대가 적임자고 선충근은 부장에 적임자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선수들이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자기 위치의 책무를 다할 선수이지만 이같이 걸출하게 뛰어난 선수들이 모였을 때의 필자가 짜는 포지션 배열 형식이다.

이 중에 갑자기 한 두 선수가 빠지더라도 대기하고 있던 민천기 김제휴 장한규 박상범등이 출전해도 거뜬히 우승을 쟁취하곤 했다. 어떤 의미에서 좀 미안하다면 정병구군과 홍성수군이다. 필자의 우승목적을 위해서 늘 주장을 못 뛰고 선봉만 뛰면서 선봉에서 큰 기록을 남긴 전형적 선봉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한 때 대학시절 개인전 시합에 경희대의 김경남 황호문 정병구가 1,2,3위를 했다.

그 때도 단체전의 경우 이 세 사람을 기용하게 되면 선봉 정병구 중견 김경남 주장 황호문으로 짠다. 그 만큼 황호문은 확실하게 믿음직한 주장 스타일이고 주장으로서 역할은 오히려 김경남보다 앞선다. 평생에 참으로 아깝게 생각하는 필자 문하 선수로써 1호로 할만하다. 황호문과 연습하면 너무나 재미가 있는 그런 검도였다. 그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그는 승단도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검도계를 떠난 사람이이건만 그들의 요청으로 오래 개인 지도를 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한 때 일본 나까구라 대회에 데리고 가서 일본선수와 연장 연장까지 가면서 일본심판의 치졸한 판정에 패했지만 국제 시합용으로 손색이 없던 선수였다.

특히 국가대표 선수에 선발 되었음에도 별 흥미 없이 사양하던 인물이다. 그런 괴벽이  검도 인으로서의 성공을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넉넉한 실력과 국내대회 개인전 단체전 여러 차례 우승한 그의 경력은 대형 선수라 할만하다. 더욱이 어쩌다 국내대회 단 한 번도 개인전 우승기록도 없고 단체전 주장을 뛰어 본 경험도 없이 어쩌다 국가대표에 뽑힌 것을 매양 국가 대표, 국가대표, 하면서 자기가 무슨 실력 있는 국가대표 선수인양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선충근 역시 국가대표에 선발되고도 사양한 선수이다. 이 또한 자기 관리에 소홀한 사람이었다.

그 자리를 메꾸어 대신 추천한 박상범은 선충근의 자리를 대신 메꾸었고 선충근 보다 훨씬 성공한 케이스다.

물론 선 충근은 개인전 단체전 기록이 찬란한 경력을 보유한 선수이다. 그와 같은 선수기용의 감각적 판별은 오늘날까지 이어오지만 그 당시 대학부는 앞의 진용이 좀 빈약했다.

고등부는 바로 주장이 윤정길로 그해 326일 대통령친람 무도대회 학생부에서 자신의 2년 후배격인 전북의 전영술을 2:0으로 누르고 준우승한 실력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중견의 박경팔은 뒷날 삼성전자 사장이 되었고 2위의 도재승은 외교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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